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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애니에 대한 단상들 : 코드기어스 R2 기타단상

맹종 오렌지가 귀여워서 보는 사람은 나 뿐?


예전에 R2 시작하기 전에 비슷한 맥락의 장문을 쓴 적이 있는데...
나는 기본적으로 코드기어스는 개연성 있는 스토리를 지향한 적이 없다고 봤고, 요즘 돌아가는 전개를 보면 그 생각에 자신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작품에 스토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라고 했었는데 정말 이 정도까지 없을 줄은 몰랐습니다 -w-

밧뜨 그러나.
마지막 화를 앞둔 요즘, 전개가 왜 이리 산으로 흘러가느니, 스토리가 없느니, 메카나 전투가 별로 좋지 않느니, 2기는 실망이니...이런 평들을 많이 접하는데...제작진들은 애초부터 스토리며 설정이며 메카 등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본다. 그럼 무엇에 관심이 있었느냐면...'캐릭터와 인간관계'.
다시 말해, 워낙 이런 저런 페이크와 포장이 많고 스케일이 크다 보니 헷갈리지만 이 작품의 본질은 '상황극'이라는 이야기.

A란 캐릭터를 어떤 시츄에이션에 넣으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A와 B란 캐릭터를 특정한 시츄에이션에 던져놓으면 서로는 어떤 관계를 빚어낼 것인가.
A의 어떤 반응에 B는 무슨 영향을 받을 것인가. B의 행동에 A는 어떤 영향을 받을 것인가.
캐릭터의 감정과 행동과 그 피드백으로 인해 다시 변해가는 캐릭터의 내면. 그리고 반복되는 시츄에이션.
뭐 이런 걸 주로 그리고 싶어했던 작품이라고 본다.

물론 어떤 작품의 어떤 스토리가 그런 내용을 안 그리겠느냐마는, 작품 내 비중을 어느 쪽에 먼저 두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꽤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캐릭터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저 캐릭터와 마찰을 시켜야겠군. 마찰을 시키기 위해서라면 이런 시츄에이션이 좋겠지. 이 시츄에이션을 펼치기 위해서는 전개를 이렇게 시킬 필요가 있겠군. 장면을 좀 더 임팩트하게 연출하려면 이렇게 꼬는 게 더 좋겠는걸.
음? 개연성이 좀 애매해지는데...괜찮아. 그 정도는 희생시켜도. 중요한 건 얘랑 얘가 격렬하게 싸움을 벌일 이유를 만드는 거야. 여기서 포인트는 이녀석이 얘 머리통을 짓밟아서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표출하고 타이틀의 임팩트를 더 해주는 거라고.

부작용: "지난 번에 죽은 캐릭터가 딱 여기에 필요한데요?" "살려"

반대로 서사성과 개연성을 중시하면 어찌되는가.
전체 스토리라인을 따지면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게 좋겠고, 시츄에이션은 이렇게 그려지는 게 자연스러럽겠는걸. 그렇다면 이 캐릭터와 저 캐릭터는 여기서 이렇게 해야 흥미진진하겠군. 둘이 주먹다짐을 해서 싸우면 훨씬 재미가 있겠는데...어떡한다. 이 캐릭터는 이런 데서 분노를 일으킬 성격이 아냐. 그럼 사건을 좀 더 가혹하게 그려볼 필요가 있겠군.

부작용: "그래도 얘들이 안 싸워요" "그럼 친한 놈 하나 죽여"
(실제로 시나리오 쓰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표현하는 사람이 많다. "어떡하지 여기선 이래야 하는데 얘네들이 **를 안 해")

물론 두 방법은 기름과 물처럼 상극이 아니라, 적절하게 섞이기 마련이고, 사실 병용은 하면 할 수록 좋다...그럼에도 작가의 스타일과 취향이란 게 있어서 비중은 한 쪽으로 쏠리기 마련이다. 완벽한 뉴트럴만큼 보기 힘든 게 어디 있남.
저번 글에서도 썼듯이, 코드기어스와 더블오는 여기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고 보고...

그래서 캐릭터 디자인이 CLAMP구나. 어울리긴 어울리는구나 싶다는 생각도 든다.
CLAMP는 동인지 시절부터 캐릭터를 1순위에 놓고 스토리를 풀어가는 창작그룹이었고...지금도 다르지 않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어느 한 쪽에 중심을 뒀다는 이야기는 제작의 방향성 이야기지 결과물의 퀄리티 이야기가 아니다.
캐릭터에 정성을 쏟아도 스토리 개연성 있는 작품 많고, 서사성을 중시하지만 캐릭터 하나하나가 빛을 발하는 작품도 많으니까...

코드기어스가 까이려면 이왕 비중을 몰아줄 거면 확실하게 몰아서 작품색을 어필하지 못했다는 점이지, 스토리 개연성이나 뭐 이런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생선가게 가서 왜 살결에 마블링이 형편없냐고 하면 주인은 이멍미...그런데 주인도 나쁘다. 포장을 한 채로 '고기'라는 딱지 붙여 팔았다. 육고기나 물고기나 고기는 맞긴 하다...요는 확실히 하란 이야기다.

요럴 때 제일 효과가 있는 게 데이빗 린치처럼 '난 그냥 관객들이 내 영화보고 불쾌해하는 게 목적이야'라고 성명을 까는 거지만.

그러나 확실히 하면...? 대중적으로 인기 얻기는 많이 힘들다. 기본적으로 마이너 작품들이 대략 이런 성향을 보인다.
철저하게 인물에 초점을 두고 전적으로 상황극을 펼치기 시작하면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경우가 드물다. 나중에 가서 작품성을 인정 받기도 하지만...

확실히 한 작품의 예로 소녀혁명 우테나가 있다. 실제로 우테나는 매우 무대연극스러운 작품이었고, 매우 생경한 코드로 점철된 애니였고, 덕분에 방영당시 거부감 표출하는 시청자들이 쇄도했었다. 비디오 테입으로 보면 테입을 끌어내서 줄넘기를 하고 LD로 보면 보고 난 뒤 프리스비를 시작한다는 우스개마저 있었던 걸로 기억...지금이야 평이 좋지만 당시는 참으로 황당한 작품 취급을 받았던 애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란 간판으로 선방이 가능했던 걸지도 모른다.

다들 알다시피 요즘은 예술하면?
굶는다.

딱히 코드기어스를 변호하자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예나 지금이나 애니를 대할 때 대중은 (빅 타이틀을 대할 경우는 특히나) 시나리오와 서사성을 기본 전제로 깔고 들어가는데, 그런 성향이 많이 허물어진 지금도 그 까칠한 기준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럼 코드기어스는 관대하게 봐 줘야 하는 애니인가?
글쎄 밸런스 면에서 여러가지로 허술한 게 사실이긴 하다... (-w-)

이런 방향성을 잡고서 정말 절묘하게 밸런스 잡은 건 에반겔리온 정도라고 본다. 그런데 너무 훌륭했다보니 막판에 크리가 터졌다.
기본적으로 서사적 결말이 없었던 상황극. 중요한 건 시츄에이션이었고. 마지막 화에선 또 다른 시츄에이션으로 재해석을 감행.
그러나 애초에 없는 결말을 안 보여줬다고 시청자들은 발광을 하고 안노는 화가 나서 극장판으로 복수를 감행한다.
"이런 거라도 보고 싶었냐?! 재밌냐 응?" "꺄악 감독이 관객을 병신 취급했어!" "늬들은 그냥 덕후들이야!" "어떻게 고객을 감히!"

당시 게시판이며 각 매체를 휩쓸었던 광란이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면 된다
그런데 대충 있을 만한 데라고 생각을 바꿔 보면...물 떠먹는 플라스틱 '빠께쓰'도 나름 운치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_-

결론이 뭐냐고?

나는 이 작품을 속 편하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다. 취향에 안 맞으면 안 보면 되는 거고, 이왕 보기 시작했으면 제작진이 뭘 말하고 싶어했던 거야? 하고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면 맘에 안 들던 것도 나름대로 흥미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만 해도 코드기어스는 전혀 취향이 아니다. 그러나 매우매우 재미있게 보고 있다.


그럼 당신이 구체적으로 느끼는 코드기어스란 어떤 작품입니까 하고 물어본다면 대답은



'헐'



...하고 일요일 밤을 마냥 즐겁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작품입니다 (...)

뭐가 됐건 이 정도까지 대중의 관심과 집중을 몰았다는 데서는 성공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고, 제작진의 역량은 나름 충분히 발휘했다고 본다. 바람직하건 아니건 나름 애니계에 한 획?을 긋기도 했고 새로운 방식의 마케팅 방법도 보여주고 있고 장사도 잘 해 먹고 있고....제작쪽에서 바랬던 이 애니의 성과 역시 딱 이 정도까지라고 본다. 길게 한 번 두고보자고. 진정한 평가는 시대가 말해준다.

애초에 이 정도 급의 작품은 몇 년이 지나야 냉정한 평가가 나오게 되어 있다. 열기가 식은 다음에 보더라도 훌륭한지 아닌지, 업계에 얼마나 순기능/역기능을 끼쳤는지. 이로 인해 주류의 변화가 생겼는지, 영향을 받은 다른 작품군들이 등장하는지 등등...

물론 업계인이나 관계자라면 지금이라도 날카로운 비평은 필수일 것이다.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다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뭐 그런 거 아니겠는가. 다만, 현재 나한테 애니란 건 여가시간 소일거리 & 포스팅 소재인데 안 그래도 피곤한 일상에 취미생활을 깐깐하게 즐기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 하루에 한 번만 더 킬킬댈 수 있다면 이보다 더한 행복이 없습니다.


결국 결론이 뭐냐면.

"수혜자는 그냥 즐기고 살련다. 엔터테인먼트인걸" 


다음은 마크로스 프론티어...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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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스티붕 2008/09/23 08:46 # 답글

    저는 코드기어스를 콜라 같다고 생각합니다

    속에 뭐가 들었든 몸에는 안좋지만 즐기기에는 그만이라는거
  • 세이트 2008/09/23 08:47 # 답글

    잘 읽었습니다. 감탄사가 글 내용을 가리는 게 조금 아쉽네요. 하지만 이 포스트가 다룬 작품에 어울리는 배치같습니다. 마크로스 프론티어는 복잡한 마음으로 보고 있는 작품이라, 다음 글도 기다리겠습니다. ^^a
  • 아레스실버 2008/09/23 09:54 # 답글

    얼마나 부작용 안 내고 상황극을 펼치느냐가 시나리오 라이터의 역량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더더욱 아쉽네요.
    무리가 오기 전에는 참 재밌게 본 작품이었는데... 아, 지금요? 즐겁게 보고 있죠. (...)
  • 백베어드 2008/09/23 10:17 # 답글

    빨리 더블오가 나와야 열폭하실덧 O<-<
  • 세르 2008/09/23 13:55 # 답글

    생각없이 보다보면 즐길수 있는 애니. 생각하는 순간 패배한다고나 할까 (....)
  • 은혈의륜 2008/09/23 14:00 # 답글

    지노-카렌 커플이 이 애니의 희망입죠. 저 둘 엮이는게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 망이모자 2008/09/23 14:07 # 답글

    코드기어스는 생각없이 봐야 재밌는 애니죠 ㅎㅎ
    전 마냥 코기는 더블오 카운터 같기만 하고 ㅇ)-<..
  • wasp 2008/09/23 14:32 # 답글

    저는 코기를 껌이라고 생각합니다.

    단물이 나올때는 재미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아무 맛도 없죠....
  • 클레어 2008/09/23 14:52 # 답글

    졸랭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마크로스F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이 녀석이 풀어줘요. 종방도 마크로스 F 다음이라 참으로 다행이라능.
  • ZECK-LE 2008/09/23 18:02 # 답글

    주인장의 그런 생각에 쏙 드는 애니가 있거든요.

    "프린세스 츄츄"를 시청하고 이 글을 다시보면 '아'하고 무너가 머리를 스칠것이오
  • Űź 2008/09/24 00:06 # 답글

    저는 오렌지 때문에 보았기 때문에 별로 불만 없습니다. 요즘 너무 귀엽거든요///
    근데 비중이 없어서 좀 슬프네요...<<

    스토리 면에선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실망도 많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런 만화도 나름 보는 맛이 있죠.
    그냥 즐기는 거랄까요.. 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기대를 버리구요.
    결론적으로 이건 뭐 그냥 콩가루 집안이 나라 말아먹는.../끌려간다
  • Űź 2008/09/24 00:09 # 답글

    아스테님의 글을 읽고 나니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곧 끝나겠다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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